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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table room>

 

 

 우리가 처음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순전히 아날로그적인 향수 때문이었다. 4살 터울의 오빠가 소학교 시절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슈퍼 패미컴>이라는 비디오 게임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우리의 대화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와 ‘아다치 미쓰루’의 <H2>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다. 그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그 모습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오빠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94년 소니가 CD를 매체로 내놓은 게임기 <플레이 스테이션>이 세계적인 히트를 쳤을 때도, 오빠는 닌텐도가 내놓은 마지막 롬 카트리지 게임기였던 <닌텐도 64>를 고집했었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오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나는 나의 오빠에 대해서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 그다지 유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빠와 함께 <슈퍼마리오 카트>를 하며 즐거워했던 내 유년기의 모습을 그가 상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나만의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했다. 사랑하는 나만의 오빠를 그를 통해 투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꽤나 심플한 사람이었다.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맥도널드에서 일정기간 판매했던 해피밀 세트에 <슈퍼 마리오> 캐릭터가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본형 슈퍼 마리오 캐릭터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햄버거를 찾아서 먹지도, 해피밀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빠라면 꽤 좋아했을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내 바로 앞에서 해피밀 8세트를 구매했다. 너구리, 부메랑, 요시 등등 마리오가 변신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마리오를 구매하려 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남은 기본형 슈퍼 마리오를 집는 순간, 나는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당혹스러움과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생각보다 많은 화를 냈고, 많이 울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양보해준 슈퍼 마리오 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이 삭막한 도쿄 변두리에서, 그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홀로 살아온 것에 대한 반작용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빠는 소니 케미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미야기 현에 위치한 공장의 생산라인이었다. 이 회사는 2012년 9월에 소니의 구조조정과 함께 매각되었다. 공장 근처에 있었던 오빠의 작은 공장 기숙시설은 그보다 훨씬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그가 모았을 법한 콘솔 게임기들과 만화책들, 그리고 피규어들은. 내가 엄마와 함께 오빠가 묵었던 기숙시설로 짐작되는 폐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흙과 건물 잔재와 옷가지와 그물들과 그 밖의 알 수 없는 수많은 잡동사니들과 함께 구겨져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었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고, 특히 게임을 너무나 좋아해서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어 일본에 왔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영업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간간이 배경삽화도 그린다고 하는 그의 덤덤한 웃음이 좋았고,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2013년 가을,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올 여름, 나는 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딱히 그가 보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단지 바닥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수초가 수면 위에서 살랑거리듯, 그렇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서있을 곳을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자랐던 시골에서도, 직장 때문에 머물렀던 도시에서도 항상 겉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부평초처럼 흘러가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

 그의 집은 해방촌에 위치한 작은 주택건물의 옥탑 방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언덕을 숨이 찰 정도로 올랐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의 집이 보였다. 붉은 벽돌로 대충 지어진, 그래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그런 집이었다. 녹색 방수 페인트가 발려진 옥상 위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돼지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는 그 숯불 통 속에 꽁초를 집어 던져 넣었다. 아마도 갑자기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영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 년 동안 연락도 되지 않았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지구상에 그 밖에 없을 것이다.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내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 역시 약간은 놀란 모양이었다.

 그냥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삭막한 도시에서 나만 누워있을 수 있는. 혹은 당신이랑 나만 누워있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집은 어디를 가든 우리를 따라왔으면 해. 우리가 도쿄에 가든, 히말라야에 가든. 그리고 거기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거야. 슈퍼 마리오 컬렉션과 카트, 요시 아일랜드도 있으면 좋겠다. 슈퍼 패미컴으로 나온 마지막 마리오 시리즈. 아마 재미있을 거야.

 그는 나의 넋두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꺼져가는 갈탄 대신 올려놓은 각목 조각이 타닥거리며 사그라져간다. 한 여름날, 해방촌의 작은 옥상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전경을 꽤나 예뻤다. 작은 건물들이 오순도순 끝없이 붙어있었다. 반딧불처럼 작은 전구들이 모여 꽤나 아름다운 도시를 그리고 있었다.

 

 그 날은 겨울을 바로 코앞에 둔 추운 가을날이었다. 일주일 정도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그의 집으로 돌아온 날이다. 익숙한 그의 옥탑방 옆에 커다란 정사각형의 큐브가 놓여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커다란 상자. 검정 방수 천으로 덮여있어서, 마치 할로윈을 위한 선물상자처럼 보였다.

 

 “선물이야.”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문은 이쪽에 있어. 라며 천 사이로 난 작은 틈을 끄집어 당긴다. 작은 방안에는 작은 침대와 작은 조명이 놓여있었다. 작고 오래된 TV하나와, 역시 마찬가지로 작고 오래된 게임기와 게임팩들이 놓여있었다. 요시 아일랜드와 동킹콩. 슈퍼마리오 카트와 컬렉션.

 몬스터는 덤이야. 그의 무덤덤한 말이 꽤나 가슴을 울렸던 것 같다. 이걸 가지고 다니고 싶어도 꽤나 무겁겠는데. 합판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이게 어떻게 이사를 다니니. 입으로는 삐딱한 말들이 나왔지만, 아마도 꽤나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은 어느 날. 맞은편 옥상에서도 작은 큐브 형태의 구조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꽤나 시끄러운 락 음악이 들려왔다. 락과는 전혀 상관없을 법한 뿔테 안경의 젊은이가, 역시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기타를 들고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연주하고 있었다.

 

Ⓒ 고재욱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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